가수 계은숙 일본 활동 이유 및 아픈 가족 사연을 소개합니다. 엔카 계은숙 씨는 원조 한류 스타로 1985년부터 일본에서 작품활동 중인 가수입니다. 계은숙 리즈 시절에는 뛰어난 미모와 노래 실력으로 잘나갔던 가수입니다. 어느 정도 인기였는지 궁금할텐데 일본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식사를 하고 고이즈미 준이치 총리가 팬클럽 회장을 맡았다는 풍문도 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밝혀진 것은 열혈팬이라고 합니다.)
일본에 한해서 만큼은 가왕 조용필, 김연자 등 인기스타보다도 현지에서 사랑받은 한국 엔카가수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홍백가합전에도 무려 7회 연속으로 출연한 유일한 한국인으로 한국 가수 중에서는 최다 출연자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최근 MBN 한일톱텐쇼 방송을 통해서 한국에서도 다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일본에서의 인기 때문에 귀화 요청까지 받았다고 하는데요.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귀화를 하지 않고 지금까지 활동했습니다.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던 중에 2008년 어머니가 치매를 앓는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다시 귀국했습니다. 이후 어머님을 간병하며 한국에서 머물렀지만 끝내 2016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엔카 가수 계은숙 프로필 및 가족 사연을 알아보겠습니다.
가수 계은숙 프로필
1961년생인 계은숙 씨는 70년대생 이상이라면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스타입니다. 1977년 럭키 샴무 광고 모델을 시작으로 1978년 유니버설 레코드를 통해서 가수로 데뷔했고 1980년 '기다리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 등을 발표하면서 MBC 10대 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한 가수입니다.
가수가 처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학교 선생님이 오락시간에 노래를 듣더니 가수해도 되겠다며 추천했다고 합니다. 이후 성수 여자중학교 졸업반 시절 후배가 판코리아 사장님 딸이 후배라 아버지를 소개 받고 가수로 데뷔 했습니다. 78년 노래하며 춤추며 노래로 데뷔해서 노태우 사단장 (노 전 대통령) 님의 초대로 위문 공연을 가기도 했었을 정도로 핫했습니다.
엔카 계은숙 가족 사연
계은숙 씨는 싱글맘인 어머니 송종열 씨 밑에서 언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임신 중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남으로 갈라선 상태라 아빠 없이 성장했다고 합니다. 원래 외갓집은 충남지방에서 소문난 집안이었지만 6.25때 어머니와 외삼촌만 살아남아서 집안의 가세가 많이 기울었을 때 태어났다고 합니다.
엄마가 생업을 위해서 명동 증권가에서 작은 매점을 운영할 때 12살 무렵 계은숙 씨는 우산이나 신문을 들고 행상을 했는데 맑은 날에는 석간 신문을 팔고 비가 오면 40원에 주고 산 비닐 우산을 60원에 팔면서 보냈다고 합니다. 계씨 종친회의 연락으로 19살 무렵 아버지와 재회했지만 이미 아버지는 다른 부인과 아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아버지는 미국으로 이주를 했고 일본에 진출하면서 이후로는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고아였던 어머니는 아버지만을 의지하고 결혼했지만 본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헤어졌다고 합니다.)
계은숙 남편 결혼 스토리!
일본 활동에 진출한 이후 인기스타로 군림하던 중 일본 공항에서 미국에서 공부하던 유학생이었던 전 남편 김영수 씨를 만났다고 합니다. 안면이 있던 동네 오빠였던 3살 연상의 김영수 씨와 조용기 목사의 주례로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 남편의 사업이 잘 안 풀리고 가수 활동에 바쁘다보니 임신도 되지 않아서 결국 협의 끝에 서로 각자의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엔카 계은숙 프로필
- 桂銀淑 Kye Eunsook
- 생년월일 1961년 7월 28일 (계은숙 나이 63세, 고향 충남 서산)
- 키 161, 몸무게 45, 종교 기독교
- 학력 서울 답십리 초등학교, 성수여자 중학교, 천호여자상업 고등학교
- 가족 언니 계미선 등 (전 남편 김영수 1992~1998), 아버지 계춘환, 어머니 송종열 등
- 데뷔 1977년 럭키 샴푸 CF
리즈 시절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을 만큼 슈퍼스타였지만 귀화를 거부하는 바람에 당시 소속사와 마찰이 생겼고 세금 30억원 추징까지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일본에서 각성제 논란으로 인해서 작품 활동까지 지장을 받게 되었고 이후 어머니 치매를 간별하다가 포르쉐 사기 사건에까지 연루되며 징역형까지 선고받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가수 계은숙 수상 이력
- 1980년 MBC 10대 가요제 신인인기상
- 1985년 전 일본 유선방송대상 신인상
- 1986년 일본 레코드대상
- 1988년 요코하마 음악제 라디오 일본엔카상, 전 일본 유선방송대상 특별상
- 1990년 일본레코드 대상 앨번 대상
- 1991년 ~1992년 일본 레코드대상 골든 디스크상
- 1994년 일본 레코드 대상 우수상, 일본작사대상 우수작품상 '꽃처럼 새처럼'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 가수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현지에서 엔카의 여왕이라고 불렸는데요. 원조 한류 스타가 되기까지 마음 고생도 많앟다고 합니다. NHK 홍백가합전 7년 연속 출전(1988~1994)이라는 대기록도 가지고 있는데 최초 출연자인 조용필이 4회, 최고의 한류스타로 꼽히는 보아 조차 6회 출연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2007년 각성제 파동과 함께 일본 활동이 어려워지고 엄마가 치매가 걸리면서 이후로는 현재 근황은 한국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가수 계은숙 작품활동
- 데뷔 1977년 럭키 샴푸 광고 모델
- 방송 출연작 : MBN 한일톱텐쇼 등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럭키 샴푸 광고 모델이지만 사실 아역배우로 먼저 데뷔했습니다. 데뷔작은 어린이 드라마 '개나리 섬의 합창' 으로 잠시 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에 맞지 않는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에 배우로서는 이내 한계가 왔고 이후 고등학교 1학년이 1977년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 앞에서 길거리 캐스팅으로 럭키 샴푸 CF를 찍고 얼굴을 알렸습니다.
명동주점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 극장식당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1년간의 수련 끝에 1978년 1집 데뷔곡 '배 타고 간 님'으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1980년 서라벌 레코드로 소속사를 옮긴 이후 부른 노래 '노래하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 등이 히트를 쳤고 1981년 후속곡 '나에겐 당신밖에', '다정한 눈빛으로' 등이 히트하면서 가수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최근 미스트롯3 빈예서 양처럼 동네에서는 유명했다고 합니다.)
가수 계은숙 노래 BEST
1. 계은숙 참새의 눈물 すずめの涙 (스즈메노 나미다)
2. 노래하고 춤추며
3. 기다리는 여심
4. 나에겐 당신밖에
5. 다정한 눈빛으로
6. 꿈의 여인 (계은숙 최근영상)
가수 계은숙 일본 진출 스토리
일본에 진출하기 전 당시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남자친구는 명문가 자제로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홀어머니에 딴따라라는 이유로 집안의 반대로 결혼식을 앞두고 예비 신랑이 사라지면서 결국 무산되면서 일본진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드라마에서 보는 돈 봉투를 주며 헤어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남자친구와 이별의 충격으로 방송을 펑크냈다가 2개월의 방송 출연 정지까지 당하면서 오기로 일본에 진출했다고 합니다. 진출 초기에는 무명으로 돈이 없어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먹고 잤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온갖 루머들 때문에 볕도 들지 않는 다다미 방에서 싸구려 청바지를 닳을때까지 입으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데뷔하는데는 우리 민단 1호인 요코하마 김시종 회장님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합니다. 2년 여의 준비 끝에 일본어를 익히고 하마 게이스케 작곡가가 준 '오사카의 황혼'을 불렀는데 오사카를 시작으로 폭발적인 반응이 왔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오사카 보쇼쿠, 북공항 노래는 지금도 가라오케 랭킹에 들 정도입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가수 진성 씨의 '안동역에서' 같은 분위기일까요?)
당시 엔카에는 청아한 목소리가 많았지만 짙은 감성이 담긴 계은숙의 목소리가 일본인들의 감성을 자극했고 계속해서 참새의 눈물, 꿈의 여인, 흠뻑 취해서, 한밤중의 샤워, 베사메무초 등으로 히트곡을 터트리며 홍백가합전 7회 연속 출전의 대기록까지 세웠습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대극장 공연을 1년에 100번도 넘게 할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었다고 합니다.
계은숙 씨의 인기를 증명하는 일화가 있는데 유명한 가수 스티비 원더 컬래버 가수로 일본에서 유일한 가수이며 일본 전국투어를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당시 일본에서 함께 활동했던 가수가 바로 이성애, 김연자, 이기현 등이었지만 인기의 차는 차원이 달랐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만큼은 가수 심수봉 못지 않은 엔카의 여왕입니다.)
유명한 일화로 일본에서 NHK 홍백가합전에 나가는 것은 가수한테도 큰 영광이었는데 한 번은 기모노를 입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엔딩 무대에는 한복을 입는 조건을 걸고서 한 번 기모노를 입고 무대에 섰다고 합니다. 다른 가수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일본에서도 계은숙 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가수 계은숙 재산 얼마나 되나요?
전성기 시절에는 일본에서 5000석 대극장을 오픈런 시키는 능력자로 수백억의 재산을 모았다고 알려졌지만 1998년 전 남편과 이혼하면서부터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2001년부터 시작해서 소속사와 지급금 반환 소송이 시작되었고 2006년 소속이 끝나자마자 2007년 11월 26일 각성제 단속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면서 활동금지에 걸리게 됩니다.
이후 실어증까지 오면서 큰 충격에 빠져서 한국으로 왔는데 출국 전에 일본 법무성과 재입국 관리사무소의 절차를 밟지 않아서 일본 입국도 거부되었다고 합니다. 2008년 귀국한 이후로 각종 사기에 휩쓸렸는데 30년 지기의 친구 보증을 섰다고 120억원에 이르는 돈까지 사기 당하며 절망에 빠졌다고 합니다.
2014년 포르쉐 사기 논란으로 인해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2016년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는 등 계속해서 힘든 일만 겪게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치매 중에도 딸 걱정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2019년 다시 앨범을 내고 현재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는 중입니다.
현재까지도 일본에서는 계은숙 청원 운동을 할 정도로 일본에서는 슈퍼스타라고 합니다. 일본 활동 당시 어려운 한국인을 만나면 도와준 일들로 인해서 지금도 일본에서는 계은숙 씨가 다시 복귀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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