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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박순자 유병언 구원파 왜?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삼색이냥 2023. 3. 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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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의 공장 (주)오대양 공장에서 32명이 집단 자살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이비 종교 때문에 벌어진 일로 오대양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박순자 가족, 종업원 등 신도 32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로 끔찍하게 죽은 상태로 발견한 사건입니다. 

 

사건이 발생한지 35년이 지났지만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관련해서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자살했는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또한 과연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그 무엇도 밝혀지지 않은 채 그대로 역사 속에 묻혔던 사건입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4화 오대양 박순자 편이 공개되면서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인물은 바로 이경수 씨로 자살이 아닌 타살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삼우트레이딩 구원파 유병언 씨 또한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 오대양 교주 박순자를 소개합니다.

 

 

1. 오대양 교주 박순자

오대양 사건
오대양 사건

오대양은 교주 박순자가 신학교를 다니다가 여호와의 증인에 입교한 후 유병언 구원파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을 데리고 만든 사이비 종교입니다. 오대양 교리는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것으로 교회와 함께 민속공예품 제조사를 함께 운영했습니다. 

 

오대양 박순자 씨는 구원파 유벙언 씨가 운영하는 세모에서 사채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담당했고 이후 독립해서 만든 것이 바로 오대양입니다. 오대양 박순자와 구원파 유병언과의 인연은 이후에도 이어져서 유병언 박순자 간에도 음모론이 있는 상태입니다. 

 

1984년 민속공예품 제조사인 (주)오대양을 만든 다음 민속 공예품 제조로 대통령상까지 받고 88 서울 올림픽 공식 협력 업체까지 선정되는 등 사업도 승승장구하기 시작합니다. 박순자는 대전과 용인에 공장을 늘리면서 사업을 확장했고 유치원, 양로원, 고아원 등의 사회사업도 함께 벌이며 성공한 여성 사업가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뒤에 알려진 충격적인 사실은 박순자가 세운 고아원은 오대양 신도들의 자녀들로 강제로 고아를 만들어서 세뇌했다고 합니다. 오대양은 군대보다도 더 철저히 신도들을 관리했고 가족이 서로 감시하는 충격적인 시스템으로 신도를 통제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박순자가 세운 양로원은 신도들의 부모들로 자식들로 하여금 부모를 구타하도록 시켰다고 합니다. 

 

이런 끔찍한 일에도 불구하고 박순자는 모범적인 기업인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표창 등 대통령성까지 수상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대전 지역에서는 자선사업가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오대양은 이 모든 사업을 신도들의 헌금을 통해서 일을 벌였다고 합니다. 

 

박순자의 사업이 승승장구하던 1986년 일본 회사와 전자부품 합작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거액인 7억 원을 투자했지만 사기를 당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진위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참고로 1986년 당시에는 서울 은마아파트가 2~3천만 원 밖에 하지 않던 시절입니다.

 

이후 돈이 필요했던 박순자는 신도들에게 사채를 빌려올 것을 명했고 몇십 프로에 달하는 이자를 감수하고 신도들은 자신의 일가친척의 돈까지 빌려서 오대양 교주 박순자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당시 박순자가 끌어모은 사채 규모는 무려 170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신도들의 돈으로 이자를 갚다가 갚지 못하는 지경이 되자 채권자들은 난리가 났고 결국 채권자들이 오대양 박순자를 고소하기 시작합니다. 궁지에 몰린 박순자는 신도들과 자신의 가족까지 80여 명과 함께 오대양 용인 공장에 모였고 그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모은 32명과 함께 식당 천장에 올라갔고 이후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이 발생했고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오대양 교주 박순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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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자 나이 사망 당시 48세 (1987년 8월 29일 사망)

학력 신학교 출신 

가족 박순자 남편 이기정, 자녀 아들 이영호(1963년생), 이재호(1966년생), 딸 이경진 (1968년생)

 

박순자 이기정 부부는 아들 2명과 딸 1명을 자녀로 두고 있었는데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때 박순자와 함께 자녀들도 모두 자살했다고 합니다. 남자 4명 여자 28명 등 총 32명이 오대양 공장 천장에서 목을 매다는 일이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요? 

 

2.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오대양 사건은 교주인 박순자가 자살한 후 공장장 이경수가 김길환 등 다른 피해자들을 교살시킨 후 마지막으로 이경수 씨가 자살하면서 32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오대양 사건은 오대양 직원이었던 김영자 씨가 처음 발견하고 이후 박순자 남편 이기정 씨에게 알려서 경찰과 세상에 알려진 사건입니다. 

 

오대양 사건 개요

일시 1987년 8월 29일경
장소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북리 산 210
피하자 총 32명 : 박순자, 이영호, 이재호, 이경진, 김길환, 이경수, 김명순, 곽남옥, 문말주, 김용자, 남옥자, 유재순, 김재은, 최정숙, 박봉희, 오현숙, 박효임, 민상옥, 김숙희, 남승자, 권응수, 이정호, 장애희, 유원례, 이인애, 박하진, 이선희, 조귀복, 이정은, 조희진, 강석순, 황숙자 등 

 

당시 수사에 의하면 32명의 열성 신도들과 박순자 자녀들은 모두 천장에 있다가 함께 교살되었고 그 외 50여 명은 지하에 숨어있어서 겨우 살았다고 합니다. 엄청난 사채를 썼던 박순자는 빚을 갚을 방법이 없자 결국 자살을 택했고 열성신도들 또한 몇 억의 빚을 지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박순자 이기정 

사건 발생 당시 박순자 남편 이기정 씨는 충청남도청 건설국장으로 재직 중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건의 충격으로 이후 사표를 제출하고 이후 이기정 근황 소식은 알려진 바 없습니다. 오대양 사건은 신도들과 교주가 당시 100억 원이 넘는 사채로 인해서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겠지만 1987년이면 이춘재가 벌인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있었던 시대로 과학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했던 시대입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생각해 보면 불과 30년 전이라고 하지만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3. 오대양 사건 이경수 누구?

오대양 사건의 미스터리 중 하나는 자살인가 타살인가와 함께 유병언 구언파와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입니다. 당시 오대양 공장 천장에서 사망한 32명을 교살했다고 알려진 공장장 이경수(나이 1945년생) 씨는 한 명씩 차례대로 교살을 했다고 합니다. 

 

오대양 이경수 씨는 교살된 시신을 정리한 다음 제일 마지막에는 스스로 목을 메서 자살했다고 합니다. 사망 당시 피해자들은 멀미약과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사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자의적으로 이경수 씨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의 진실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것은 오대양 사건의 열쇠를 가진 총무 노순호, 기숙사 황숙자, 육아원 조재선 등 핵심 직원들이 이미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후 오대양 직원 11명에 대해서 검찰에서도 조사를 했지만 32명 집단자살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4. 박순자 유병언 구원파 미스테리

오대양 구원파 유병언
오대양 구원파 유병언 기사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의 가장 큰 미스테리는 무려 100억 원이 넘는 오대양 박순자 교주의 빚이 어디로 갔는가 하는 점입니다. 박순자가 유병언 구원파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박순자가 유병언의 하수인이라는 의혹은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박찬종 국회의원 등이 박순자 구원파 유병언 연관설을 주장하면서 제기된 음모론입니다. 또한 살해현장에서 삼우 트레이딩 명함이 발견되었는데 사장이 바로 구원파 유병언입니다. 그리고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라는 구원파 책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탁명환 씨가 박순자 유병원 구원파 관련설을 제기했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당시 170억 원에 달했다고 하는 빚과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무려 27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남은 재산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88 서울 올림픽 당시 서울 은마아파트 1채가 3000만 원 정도였고 1986년 지하철 표값은 고작 200원에 불과했던 시절입니다. 170억 원의 돈은 당시 1987년 대한민국 국가 예산이 15조 원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현재로는 몇천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이후 음모론이 제기되기로는 박순자는 유병언 구원파 자금책으로 사채를 조달하다가 이후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서 타살되었다는 주장입니다. 1991년 7월 구원파 신도 6명이 오대양 사건의 진실이라면서 박순자 씨가 지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오대양 박순자가 유병언 구원파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박순자 유병언 두 사람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발견된 바 없습니다. 유벙언 전 세모 회장은 오대양 사건과 관련해서 받은 조사에서는 전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JMS 교회 정명석, 아가동산 김기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등과 달리 가장 끔찍한 결말로 끝이 난 사건입니다. 수십 프로에 달하는 사채를 폰지사기 형태로 운영했다지만 당시 물가를 생각할 때 170억 원이라는 사채 규모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순자 유병언 관계는 밝혀진 바 없이 안타까운 생명만 사라졌습니다. 또한 170억이 넘는다는 오대양의 돈 또한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오대양 박순자 편에서도 이 점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교주 4명 모두 1980년대를 배경으로 시작해 사이비 종교를 일으켰습니다. 사이비 종교 문제는 1980년대에 시작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믿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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